저의 예배에 대한 추억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자란 보수적인 장로교의 틀에 박힌 예배는 지겨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부모의 강요도 있었지만, 친구들이 좋아서 교회 나간 것이지 예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부흥회, 수련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대학부에 가서 예배가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하면 은혜받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이 예배라는 것을 배웠을 때, 저는 관점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배운 대로, 예배를 통한 나의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관점이 바뀌면서 제 예배 경험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평범한, 지극히 고요하고, 침착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의, 전통적인 장로교 그것도 수요예배 때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지는 10월의 햇살이 예배당 옆 창문을 비추는데, 퇴근하고 오신 분들이 피곤함을 이기고 찬송을 부르는데, 저는 그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찬양사역자(인도자이든 작곡자이든간에)들 중에는 두 가지 극단적인 모습이 존재합니다. 너무 문화적이어서 음악적인 기술과 퍼포먼스에만 치중하여 경건의 모습만 있고 능력이 없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너무 은혜에만 치중하여 음악성과 문화적인 완성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도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심지어 저는 예배의 장소나 분위기가 하나님의 영광을 좌우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이 예배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예배자로서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갈망하는 것 뿐입니다. 내가 받을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하고 소망하는 것, 이것이 예배입니다. 매트 래드맨(유명한 찬양 작곡가이며 찬양인도자)의 일화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
그(래드맨)는 3,000명이 모이든 3명이 모이든 동일한 열정으로 예배를 인도했다. 사실 몇 년 전에 그는 웸블리 주경기장(우리로 말하면 월드컵 주경기장쯤 됨)에서 열렸던 <세상의 챔피온>이라는 집회에서 몇 몇 예배를 인도했다. 그날 토요일 거기에는 4만 명이 넘게 모였었다. 다음날 우리 중 15명은 주님께 경배를 드리려고 왓포드(근처 소도시)에 있는 쇼핑센터로 갔다.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이 우리를 지나쳐 갈 때 우리는 한 시간 동안 그곳에서 경배했다. 그들 중 몇 명만이 서서 우리를 지켜보았다. 그 경배 시간이 막바지에 이르자 기타를 치고 있던 나는 우리를 인도하는 래드맨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난 갑자기 그가 전날 웸블리 주경기장의 4만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예배를 인도했을 때만큼이나 쇼핑센터에서 우리 15명과 함께 예배를 인도하는 데도 많은 헌신과 노력과 에너지를 쏟고 있음을 깨달았다. 래드맨은 일찍이 경배란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것이기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끄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는 항상 한 분의 관중 앞에서 공연했다.
---------------
이런 예배자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가지는 것이 참된 예배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예배를 꿈꿉니다.